역행의 삶의 진수(6/12월)

 

그분께서 행복 선언을 하시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영역이 있어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과 슬픈 사람

굶주린 사람과 박해받는 사람

그 누가 가난한 걸 좋아하며

슬픈 상태를 행복하다 하겠나

또 굶주리는데 어떻게 행복

거기다 박해 중에 있는데 

어떻게 행복을 논할 수 있는가

사고의 전환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한다

여러 차원에서 고민을 한다

무엇으로 이걸 정당화 할까

복음삼덕이 강하게 올라온다

청빈 정결 순명이 그 골자다

물론 산상수훈의 행복 선언

그 내용에 비하면 약하다

그래도 누가 청빈한 삶이 좋고

아주 순백의 정결을 위하며

그렇게 예예하며 평생을 살까

허나 그분의 삶을 철저히 보면

그분은 그 이상의 삶 속에서 

천국의 삶이 이 땅에서 현현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일까 그분은 완전 달랐다

누구도 못 하는 초월적인 삶

그리고 초능력의 일을 행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 이전에 그분이 행한 삶

그 안에서 보이는 극단적 수행

그것이 뭔지를 정확히 보라

그것은 바로 역행의 삶이었다

산상수훈의 삶의 골자가 뭔가

바로 그 누구도 못 하는 그 삶

그것을 우선 행하라는 것이다

그때 행복 선언이 보일 것이다.

 

이인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