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공(貧空)

마음에 빈공을 새기던 날 
그렇게 보려 해도 안 보이더니
한 순간에 다 들어오는 건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욕망과 교만을 다 불사르던 날
사는 재미가 없는 것 같아
담배 끊고 어쩔 줄 모르던 손 같아
한참을 헤매기도 했지만 
고향 안방에 누워 하늘 보니
말 그대로 행복이다. 
찾으면 달아나고 
잡았다 싶으면 허공이더니
마음에 
그분 이름 하나 새겼을 뿐인데
이렇게 신선하다니 신비다
세상을 다 돌아와 앉은 무덤가
기억 속에 있는 이들을 
다 만나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 같아
하늘에 계신 분과 이야길 나누다
다시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고 
내려오는 길 
이젠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나려나
애초부터 그분의 모친은
이 모든 걸 깨닫고 살았기에
그 어린 나이에 잉태했을 때도
그저 하늘을 향해 감사하고
하늘의 뜻대로 살기를 청하여
세상의 가장 고귀한 모친인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나보다
나는 얼마나 많은 빈공을 새겨야
그분의 발뒤꿈치라도 따르겠나. 

이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