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안에 있는 거룩함    

용서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하루에 몇 차례 오가며
이것을 용서해야 하나 아니지
그것을 어떻게 용서해 안 되지
이것이 사람의 참 모습이다
근데 베드로와 그분 대화중에
몇 번을 용서해 줘야 하나요
이는 유대교 랍비를 의식하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랍비는 용서에 대해 세 번 
용서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에 베드로는 일곱 번 용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자
무슨 소릴 용서 될 때까지지
77번이라도 용서를 해야지
진짜는 용서해주고 용서 받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참으로 용서 받는 것 말이야
그럼 어디까지가 참 용서일까
중용을 잘 보면 뭔가 보인다
‘誠者天之道 誠之者人之道’
거룩함은 하늘의 도이고
거룩하기 위함은 인간의 도다
누구나 성스러워지길 원 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그처럼 용서하지 않고
거룩하거나 거룩해 지는 것
그것은 쉽지가 않은 것이다
왜 그분께서 77번 용서에다
무한한 용서를 언급하시는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듣는다
그만큼 용서는 난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살면 살수록 알 수 있다
해서 그분은 무한한 사랑만큼
무한한 용서를 주문하심이다.

이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