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4일 [대림 제2주일]

 

이사야 11,1-10

로마 15,4-9

마태오 3,1-12

 

한없는 겸손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위대함, 

그 비결이었습니다!

 

 

요즘 봉독되는 성경말씀에는 대림시기라는 무대를 빛낸 위대한 조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마리아와 요셉, 세례자 요한...

사실 그들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던 존재,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단순함과 겸손함을 바탕으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명으로 충실성으로 인해, 

구세주 예수님의 육화강생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세세대대로 교회 안의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세례자 요한은 이 대림시기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구약 시대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대 예언자인 동시에 신약 시대를 활짝 여는 가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의 위대성에 대해서 극찬하신 바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오 복음 11장 11절)

 

세례자 요한의 위대성 그 배경에는 지극한 겸손의 덕이 자리잡다는 것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있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신원에 대해서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근원과 한계에 대해서 늘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진짜입니다. 

그분은 너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습니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한갖 티끌이요 먼지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제게 큰 은총을 베푸셔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나는 이 땅 위에 잠시 등장했다가 즉시 사라지고마는 한 줄기 연기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나는 길이 아니라 이정표입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배우입니다.”

 

한없는 겸손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위대함, 

그 비결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보잘것 없는 주님의 피조물이지만, 겸손의 덕을 통해 위대해집니다. 

힘든 일이겠지만 자신을 낮추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어렵더라도 우리 내면을 말끔히 비우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득가득 채워주십니다.

 

구약시대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대 예언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닦는 선구자로서 

세례자 요한의 태도는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만일 제가 세례자 요한이었다면,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 앞에 조금은 망설였습니다. 

스스로를 좀 더 있어보이게 하려고 포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메시아까지는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잘 알고 있으며, 일정 부분 그분의 인류 구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분과 나는 아주 가까운 친척 관계이며, 그분의 가족들도 잘 알고 지낸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정체,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하늘을 찌르는 인기 앞에 조금도 우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유효 기간이 언제까지 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떠날 순간이 왔음을 인지하자, 단 한 순간도 지체없이, 그 어떤 미련도 없이, 잘 마련된 무대를 주인공이신 예수님께 넘겨드린 다음, 신속히 구세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겸손의 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뭐 그리 아쉬움이 많은지, 미적미적, “아직 떠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어요. 좀 더 있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바람처럼, 구름처럼, 홀연히 떠나가는 세례자 요한의 뒷모습이 참으로 멋있어 보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